떡이란 곡식을 가루 내어 물과 반죽하여 쪄서 만드는 음식을 통틀어서 말하며, 가래떡, 백설기, 꿀떡, 바람 떡, 시루떡, 약식, 인절미,
송편, 주악, 경단 등이 모두 이에 속한다.
◈ 떡의 유래와 발달 과정
삼국시대 이전부터 청동기시대의 유적인 나진초 도패총 및 삼국시대의 고분군에서 시루가 출토되고 있어, 우리나라의 떡은 삼국
(고구려, 신라, 백제)이 정립되기 이전에 만들어졌을 것이라는 추론이 지배적이다. 이러한 추론의 증명으로 삼국시대 이전에 쌀을
비롯하여 피, 기장, 콩, 조, 수수 등과 같은 곡물이 생산되고 있었고, 신석기시대 유적지인 황해도 봉산 지탑리 유적에서 곡물 껍질을
벗기거나, 가루로 빻는데 쓰는 원시적 도구인 갈돌이 발견되었으며, 이 무렵의 생활유적지에는 거의 예외 없이 연석이 발견되고
있기 때문이다.
삼국 및 통일신라시대로 접어들어 권농시책과 함께 본격적인 농경시대가 전개되면서 쌀을 중심으로 한 곡물의 생산량이 증대되어
쌀이외의 곡물을 이용한 떡도 다양해졌음을 알 수 있다.
고려시대로 접어들면서 떡은 한층 발달하였고, 상류층이나 세시 행사와 제사 음식 만으로서가 아닌, 하나의 별식으로 일반 서민층
에도 널리 보급되었음을 엿볼 수 있다.
고려 말기에 이르러 단자류와 전병 등 다양한 종류의 떡이 등장하였다. 고려 공양왕 때 목은 이색 저서 《목은집(牧隱集)》에 '팥소를
싸서 만든 찰 전병이 맛이 매우 좋았다'고 하는 기록과 함께 '점서'라고 하는 찰 기장으로 만든 송편도 등장하고 잇다.
조선시대로 접어들면서 떡은 혼례 · 빈례 · 제례 등 각종 행사와 대 · 소연회에 필수적인 음식으로 자리 잡았으며, 이 같은 풍속은
지금까지 전통과 관습으로 이어져 오고 있다.
초기에는 단순하게 곡물가루를 증숙 하던 방법에서 벗어나 점차 다른 곡물을 배합하거나 부재료로 쓰는 소와 고물의 재료로 꽃이
과일, 향신료 등을 이용하게 되었다.
즉곡류는 물론이고 채소 · 과일 · 버섯 · 야생초, 한약재, 해조류 등을 주재료로 이용하였고, 소와 고물, 그리고 감미료로 조청, 꿀,
계피, 설탕, 엿기름, 참깨, 팥, 밤, 대추 등이 이용되었으며, 치자, 수리취, 승검초, 송기, 쑥, 연지, 오미자 등이 발색제로 이용되면서
떡은 한층 화려해지고 모양도 다양해졌으며 맛 또한 독특해졌다.
대표적인 문헌으로 1670년 《음식지미방(飮食知味方)》에는 석이편법, 밤설기법, 전화법, 빈잡법, 잡과법, 상화법, 증편법, 섭산산법
등 8가지 떡 만드는 방법이 수록되어 있고, 1815년 《규합총서(閨閤叢書)》에는 석탄병, 백설기, 혼돈병, 복령조화고, 도행병, 무떡,
기단가오, 신과병, 토란병, 송기떡, 서여향병, 석이병, 상화, 밤조악, 대추조악 등 27종 떡이름과 만드는 법이 기록되어 있다.
◈ 떡의 종류
떡의 종류는 만드는 방법에 따라 시루에 쪄서 만드는 찌는 떡, 사루에 찐 다음 떡판이나 절구를 이용하여 쳐서 만드는 치는 떡,
기름에 지져서 만드는 지지는 떡, 찹쌀가루로 반죽을 한 다음 삶아서 건져 내는 삶는 떡 등 크게 네 종류로 나눈다. 시루에 찐 떡이
가장 오래된 조리법으로 떡을 만드는 기본적 방법이다.
찌는 떡
멥쌀이나 찹쌀을 물에 담갔다가 가루로 만들어 시루에 넣고 김을 올려 익히며, 찌는 방법에 따라 다시 설기떡(무리 떡)과 켜 떡으로
구분한다. 설기떡은 멥쌀가루에 물을 내려서 한 덩어리가 되게 찌는 떡이고, 켜 떡은 중간에 한 켜씩 고물을 얹어가며 켜켜로
안쳐서 찌는 떡이다.
치는 떡
멥쌀을 물에 담갔다가 가루로 만들어 시루에 넣고 김을 올려 시루에 찐 다음 절구나 안반(떡칠 때 사용하는 떡판) 등에서 친 것으로
흰떡, 절편, 차륜병(수레바퀴모양의 절편)개피떡, 인절미, 단자류 등이 있다.
지지는 떡
찹쌀가루를 반죽하여 모양을 만들어 기름에 지진 떡으로 전병 · 화전 · 주악 · 부꾸미 등이 있다.
삶는 떡
찹쌀을 반죽하여 빚기도 하지만 주악이나 약과 모양으로 썰고, 더러는 구멍 떡으로 만들어서 끓는 물에 삶아 건져서 고물을 묻히는
떡이다.
떡 만드는 도구
Ⅰ. 떡 살
떡본 또는 떡손, 병형(餠型)이라고도 한다. 고려시대부터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 떡살은 누르는 면에 음각 혹은 양각의 문양을
만들어 찍으면 문양이 남게되는데, 만드는 방법은 적절한 크기로 잘라낸 떡에 물기를 묻혀 떡살로 도장을 찍듯이 누르면, 그 문양이
선명하게 나타난다. 떡살은 재질에 따라 나무 떡살과 자기 떡살로 나눌 수 있다. 나무 떡살은 단단한 소나무, 참나무, 감나무, 박달
나무 등으로 만드는 데 30cm 정도 길이의 나무에 4~6개의 각기 다른 무늬를 새긴 것이다. 사기, 백자, 오지 등으로 만드는 자기
떡살은 5~11㎝ 정도 둥근 도장 모양DL다. 특히 궁중에서 쓰던 사기 떡살은 백자(白磁)로 만든 것이 많다. 떡 의 문양은 주로 부귀(富貴)
와 수복(壽福)을 기원하는 뜻을 담고 있는 길상(吉祥)무늬를 비롯하여 장수와 해로를 뜻하는 십장생(十長生)·봉황, 국수무늬, 잉어, 벌,
, 새 등의 동물무늬와 태극무늬, 빗살 등 기하학적 무늬, 만(卍)자 등의 불교적인 무늬와 꽃, 수레바퀴 무늬 등 다양하다. 특히 떡살의
문양은 다양한 의미를 담고 있어서 좋은 일, 궂은일, 돌, 회갑 등 용도에 따라 다르게 사용했다. 단오날의 수리취 절편에는 수레바
무늬, 잔치 떡에는 꽃무늬, 사돈이나 친지에게 보내는 떡에는 길상무늬를 찍었다. 특히 선물용 떡은 그 문양에 따라 보내는 사람의
마음이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떡살의 무늬는 가문에 따라 독특한 문양이 정해져 있었다. 그 문양은 좀처럼 바꾸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다른 집안에 빌려주지도 않았다. 부득이하게 떡살의 문양을 바꾸어야 할 때에는 문중의 승낙을 받아야 할 만큼 집안의
상징적인 무늬로 통용되었다.
보기 좋은 떡 이 먹기 좋다는 말이 있듯이, 먹는 떡 하나라도 보는 즐거움으로 구미를 돋구었다. 사소한 것 하나에도 의미를 부여하고
치장하기를 좋아하던 우리 문화의 상징성을 보여주는 떡살은, 우리 선조들의 품격 있는 음식문화를 대변하고 있다. 품격 있는 떡
중에는 경단류와 단자류, 잡과병류, 기타 쇄백자, 산약병, 풍소병 등이 있다.
이상으로 떡의 유래와 떡의 종류에 대해 알아 보았습니다.
떡이란 곡식을 가루 내어 물과 반죽하여 쪄서 만드는 음식을 통틀어서 말하며, 가래떡, 백설기, 꿀떡, 바람 떡, 시루떡, 약식, 인절미,
송편, 주악, 경단 등이 모두 이에 속한다.
◈ 떡의 유래와 발달 과정
삼국시대 이전부터 청동기시대의 유적인 나진초 도패총 및 삼국시대의 고분군에서 시루가 출토되고 있어, 우리나라의 떡은 삼국
(고구려, 신라, 백제)이 정립되기 이전에 만들어졌을 것이라는 추론이 지배적이다. 이러한 추론의 증명으로 삼국시대 이전에 쌀을
비롯하여 피, 기장, 콩, 조, 수수 등과 같은 곡물이 생산되고 있었고, 신석기시대 유적지인 황해도 봉산 지탑리 유적에서 곡물 껍질을
벗기거나, 가루로 빻는데 쓰는 원시적 도구인 갈돌이 발견되었으며, 이 무렵의 생활유적지에는 거의 예외 없이 연석이 발견되고
있기 때문이다.
삼국 및 통일신라시대로 접어들어 권농시책과 함께 본격적인 농경시대가 전개되면서 쌀을 중심으로 한 곡물의 생산량이 증대되어
쌀이외의 곡물을 이용한 떡도 다양해졌음을 알 수 있다.
고려시대로 접어들면서 떡은 한층 발달하였고, 상류층이나 세시 행사와 제사 음식 만으로서가 아닌, 하나의 별식으로 일반 서민층
에도 널리 보급되었음을 엿볼 수 있다.
고려 말기에 이르러 단자류와 전병 등 다양한 종류의 떡이 등장하였다. 고려 공양왕 때 목은 이색 저서 《목은집(牧隱集)》에 '팥소를
싸서 만든 찰 전병이 맛이 매우 좋았다'고 하는 기록과 함께 '점서'라고 하는 찰 기장으로 만든 송편도 등장하고 잇다.
조선시대로 접어들면서 떡은 혼례 · 빈례 · 제례 등 각종 행사와 대 · 소연회에 필수적인 음식으로 자리 잡았으며, 이 같은 풍속은
지금까지 전통과 관습으로 이어져 오고 있다.
초기에는 단순하게 곡물가루를 증숙 하던 방법에서 벗어나 점차 다른 곡물을 배합하거나 부재료로 쓰는 소와 고물의 재료로 꽃이
과일, 향신료 등을 이용하게 되었다.
즉곡류는 물론이고 채소 · 과일 · 버섯 · 야생초, 한약재, 해조류 등을 주재료로 이용하였고, 소와 고물, 그리고 감미료로 조청, 꿀,
계피, 설탕, 엿기름, 참깨, 팥, 밤, 대추 등이 이용되었으며, 치자, 수리취, 승검초, 송기, 쑥, 연지, 오미자 등이 발색제로 이용되면서
떡은 한층 화려해지고 모양도 다양해졌으며 맛 또한 독특해졌다.
대표적인 문헌으로 1670년 《음식지미방(飮食知味方)》에는 석이편법, 밤설기법, 전화법, 빈잡법, 잡과법, 상화법, 증편법, 섭산산법
등 8가지 떡 만드는 방법이 수록되어 있고, 1815년 《규합총서(閨閤叢書)》에는 석탄병, 백설기, 혼돈병, 복령조화고, 도행병, 무떡,
기단가오, 신과병, 토란병, 송기떡, 서여향병, 석이병, 상화, 밤조악, 대추조악 등 27종 떡이름과 만드는 법이 기록되어 있다.
◈ 떡의 종류
떡의 종류는 만드는 방법에 따라 시루에 쪄서 만드는 찌는 떡, 사루에 찐 다음 떡판이나 절구를 이용하여 쳐서 만드는 치는 떡,
기름에 지져서 만드는 지지는 떡, 찹쌀가루로 반죽을 한 다음 삶아서 건져 내는 삶는 떡 등 크게 네 종류로 나눈다. 시루에 찐 떡이
가장 오래된 조리법으로 떡을 만드는 기본적 방법이다.
찌는 떡
멥쌀이나 찹쌀을 물에 담갔다가 가루로 만들어 시루에 넣고 김을 올려 익히며, 찌는 방법에 따라 다시 설기떡(무리 떡)과 켜 떡으로
구분한다. 설기떡은 멥쌀가루에 물을 내려서 한 덩어리가 되게 찌는 떡이고, 켜 떡은 중간에 한 켜씩 고물을 얹어가며 켜켜로
안쳐서 찌는 떡이다.
치는 떡
멥쌀을 물에 담갔다가 가루로 만들어 시루에 넣고 김을 올려 시루에 찐 다음 절구나 안반(떡칠 때 사용하는 떡판) 등에서 친 것으로
흰떡, 절편, 차륜병(수레바퀴모양의 절편)개피떡, 인절미, 단자류 등이 있다.
지지는 떡
찹쌀가루를 반죽하여 모양을 만들어 기름에 지진 떡으로 전병 · 화전 · 주악 · 부꾸미 등이 있다.
삶는 떡
찹쌀을 반죽하여 빚기도 하지만 주악이나 약과 모양으로 썰고, 더러는 구멍 떡으로 만들어서 끓는 물에 삶아 건져서 고물을 묻히는
떡이다.
떡 만드는 도구
Ⅰ. 떡 살
떡본 또는 떡손, 병형(餠型)이라고도 한다. 고려시대부터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 떡살은 누르는 면에 음각 혹은 양각의 문양을
만들어 찍으면 문양이 남게되는데, 만드는 방법은 적절한 크기로 잘라낸 떡에 물기를 묻혀 떡살로 도장을 찍듯이 누르면, 그 문양이
선명하게 나타난다. 떡살은 재질에 따라 나무 떡살과 자기 떡살로 나눌 수 있다. 나무 떡살은 단단한 소나무, 참나무, 감나무, 박달
나무 등으로 만드는 데 30cm 정도 길이의 나무에 4~6개의 각기 다른 무늬를 새긴 것이다. 사기, 백자, 오지 등으로 만드는 자기
떡살은 5~11㎝ 정도 둥근 도장 모양DL다. 특히 궁중에서 쓰던 사기 떡살은 백자(白磁)로 만든 것이 많다. 떡 의 문양은 주로 부귀(富貴)
와 수복(壽福)을 기원하는 뜻을 담고 있는 길상(吉祥)무늬를 비롯하여 장수와 해로를 뜻하는 십장생(十長生)·봉황, 국수무늬, 잉어, 벌,
, 새 등의 동물무늬와 태극무늬, 빗살 등 기하학적 무늬, 만(卍)자 등의 불교적인 무늬와 꽃, 수레바퀴 무늬 등 다양하다. 특히 떡살의
문양은 다양한 의미를 담고 있어서 좋은 일, 궂은일, 돌, 회갑 등 용도에 따라 다르게 사용했다. 단오날의 수리취 절편에는 수레바
무늬, 잔치 떡에는 꽃무늬, 사돈이나 친지에게 보내는 떡에는 길상무늬를 찍었다. 특히 선물용 떡은 그 문양에 따라 보내는 사람의
마음이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떡살의 무늬는 가문에 따라 독특한 문양이 정해져 있었다. 그 문양은 좀처럼 바꾸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다른 집안에 빌려주지도 않았다. 부득이하게 떡살의 문양을 바꾸어야 할 때에는 문중의 승낙을 받아야 할 만큼 집안의
상징적인 무늬로 통용되었다.
보기 좋은 떡 이 먹기 좋다는 말이 있듯이, 먹는 떡 하나라도 보는 즐거움으로 구미를 돋구었다. 사소한 것 하나에도 의미를 부여하고
치장하기를 좋아하던 우리 문화의 상징성을 보여주는 떡살은, 우리 선조들의 품격 있는 음식문화를 대변하고 있다. 품격 있는 떡
중에는 경단류와 단자류, 잡과병류, 기타 쇄백자, 산약병, 풍소병 등이 있다.
이상으로 떡의 유래와 떡의 종류에 대해 알아 보았습니다.